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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부활과 영생의 이해(2)-천안은하교회 정현대 목사님

새사람1 2013. 3. 8. 17:01

2013 3 3          부활과 영생의 이해(2)

6:40. 내 아버지의 뜻은 아들을 보고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는 이것이니 마지막 날에 내가 이를 다시 살리리라 하시니라. (For my Father's will is that everyone who looks to the Son and believes in him shall have eternal life, and I will raise him up at the last day.)

11:25. 예수께서 가라사대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26.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

고전15:54. 이 썩을 것이 썩지 아니함을 입고 이 죽을 것이 죽지 아니함을 입을 때에는 사망이 이김의 삼킨바 되리라고 기록된 말씀이 응하리라. 55. 사망아 너의 이기는 것이 어디 있느냐 사망아 너의 쏘는 것이 어디 있느냐? 56. 사망의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

 

부활의 정의(定義)와 기본개념

부활이란 죽었던 사람의 이 생명을 회복하는 하나님의 기적을 말한다.

부활이라는 용어가 수식을 받을 경우에는 대체로 죽은 자의 부활로 표현된다. (22:31, 20:37, 4:2, 고전15:12)

성서는 성도들의 부활을 의인들의 부활 (14:14, 24:15), 생명의 부활 (5:29) 말하기도 한다.

5: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성서는 악인들의 부활을 불의한 자의 부활이나 (24:15) 심판의 부활 (5:29) 표현하기도 한다.

교회의 신조들 속에 자주 등장하는 몸의 부활도 성서에 근거한 것이다. (27:52, 8:11, 고전15:35, 3:21)

초대교회 교부들은 영지주의자들이 부활을 죽은 영혼의 부활로 의미하는 것에 맞서 육체의 부활이란 용어를 사용했다.

이교도나 불신자들은 언제나 부활의 희망이 없이 살고 있다. 이방인들은 바울의 부활에 관한 증언을 조롱했다.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성서의 무오성을 부인하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부활의 절대적 소망을 현대판 영혼불멸설로 바꾸어버리기도 한다. 전통적인 의미에서의 성서의 무오성을 부인한 칼 바르트도 인생의 종말을 영원화(永遠化)로 이해했다. 현생이 끝나면 사람은 영원히 하나님의 정신 속에 존재하게 될 것이라는 것이다.(Church Dogmatics III) 구약도 인간이 몸과 영혼으로써 영생을 얻게 되어 있었음을 말한다. (3:22) 부활의 기본 원리는 인간이 죄의 권세와 죽음으로부터 몸과 영혼이 구출되는 것이다.

자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사망을 폐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의 길과 소망을 인류에게 열어 놓으셨다. (6:40, 11:25~, 고전15:54~)

죽은 자의 부활을 열어놓으신 분은 바로 전능하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22:29, 고전6:14, 고전15:38, 고후1:9)

그러나 일시적인 소생은 선지자들과 (왕상17:17~, 왕하4:32) 사도들 같은 (20:10) 대행자들을 통하여 이루어졌다.

참된 의미에서 영생 부활은 오직 독생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주어진 것이다.

그는 그 자신이 부활이자 생명으로써 (11:25) 생명과 불멸성을 세상에 밝히 보여주셨고 (딤후1:10) 자신의 영화로운 부활로 우리의 부활을 보증하셨으며 (고전15:20~) 끝내 자신을 생명과로서 우리에게 주셨다. (6:54-57)

신약성경에서 예수의 부활을 언급한다면, 그것은 예수와 함께 종말론적 사건들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수는 죽은 자들 가운데서 태초로 부활하신 분이다. (26:23, 고전15:20, 1:18)

이로써 예수의 부활은 종말론적 희망의 지평 안에서 인식되고 종말론적 사건으로서의 () 규정된다. 따라서 그리스도의 부활은 묵은 생명에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창조의 시작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다시는 죽지 않는 부활이며 죽음의 지배를 영원히 벗어 던진 부활이기 때문이다. - W. Kasper.

13:34, “그러므로 다른 편에 일렀으되 주의 거룩한 자로 썩음을 당하지 않게 하시리라 하셨느니라.

6:9,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사셨으매 다시 죽지 아니하시고 사망이 다시 그를 주장하지 못할 줄을 앎이로라”

그리스도의 죽음은 큰 그림의 의미에서 옛 창조의 종결이고 그리스도의 부활은 새 창조의 출발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주 안에 나타난 유일한 영생의 확증이었다. 그리스도의 부활 밖에 다른 영생이 없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악의 세력과 죄의 권세에 대한 영원한 승리를 의미한다. 여기서 하나님 아들들의 영광의 자유가 온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다시는 죽음이 없다는 데서 하나님의 의로 이루어지는 영원한 천국의 본질을 표상한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긍정이다. 사망의 영원한 폐지와 새 우주의 존재 가치를 말해주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영원한 미래에 대한 현재적 확증이다. 이미 성도들 안에 죽지 않는 생명이 와 있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우주적 운명의 전환점이다. 생자필멸과 회자정리가 종결되고 제행무상이 근본적으로 끝났기 때문이다.

 

♦ 부활의 의미

부활이라는 한 마디에 기독교 전체와 만유의 운명이 걸려 있다.

여기서도 믿음은 역사 위에 서있으면서 동시에 역사 이상의 차원에 근거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는 영원하신 정복자로써 죽음에서 일어나셨다.

그러나 사건은 보통의 역사가가 접촉할 있는 범위 밖에 있는 것이다. - Karl Barth

부활은 세대 전환점이다. 시간이 무한의 도전을 받아 정지 상태에 서있는 신적(神的)인 순간이다.

우리는 재림에서도 같은 의미를 발견한다. 이것은 No Yes로 돌리는 하나님의 거룩한 표적이다. 심판에서 은혜로 들어간 순간이며 죽음에서 생명으로 옮긴 현실이다.

그러나 부활 자체는 부활절 사건보다 훨씬 관대한 진리를 갖고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좌절하고 소외된 모든 사람들에게 생명을 주신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성령을 우리의 모든 존재와 소유와 생의 과정에 불어넣는 것을 의미한다. - Karl Barth

이 세상에서 가장 큰 긍정(肯定 affirmation)은 그리스도의 부활이다.

하나님께서 그것을 통하여 새 영역 안에 있을 것들을 모두 탄생시켰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부활은 창조의 벽두(劈頭) 있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하나님의 새 출발점이다. - Watchman Nee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기독교 신앙의 근거이다.

인류 죄값을 지불하고 도말하시 되 파산치 않으시고 온 세상의 악에 대면하셨으나 파멸하지 않으셨다.

악에 맞서 정복함으로써 인류의 머리가 되셨고 영원한 미래를 여심으로 거기에 참여하는 소망의 근거가 되셨다.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우리는 구속된 인류의 운명이 예시되고 있음을 본다.

그리스도의 부활이야말로 기독교적 낙관주의의 요지부동한 근거이다. - Michasel Green

부활은 기적이다. 죽음에서 새 삶이 시작되는 시작이다.

부활은 사학(史學)적 인식 대상이 아니라 부활자의 실재와 관련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신앙에의 소명이다.

역사 속에서 확인될 있는 것은 예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에 대한 제자들의 증언과 신앙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가장 깊은 의미에서 하나님의 행동이요 하나님의 실재 자체의 문제이다.

부활은 인간의 죽음에서 하나님의 포괄적 차원으로 초월하는 사건이다.

전혀 다른 하나님의 존재양식 안에서 완전히 새로운 존재양식과 관련된 사건이다. - Hans Qüng

부활의 메시지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을 말한다. - Karl Barth

하나님의 주권은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 처음부터 지니는 취지였다.

성만찬의 살과 피가 의미하는 예수님의 생애와 십자가는 인간적인 가능성을 초월한 가능성의 실현에 있다. 부활은 영원을 의미한다. 부활은 시간에게 의미를 부여하는 하나님의 주권이기 때문에 시간 안에 있지 않다. 이제도 계시고 전에도 계셨으며 장차 오실 (1:4) 분의 주권이 부활에서 나타났다.

예수의 부활은 새로운 질의 세계의 새로운 종류의 세계를 보여주고 말해준다.

성서에 나타난 완전하고도 절대적인 기적은 우리는 무덤에서 일으킬 것이다.

부활은 만유를 창조한 하나님의 구속 안에 나타난 새로운 실체성(new corporeity)의 의미한다.

부활은 인간의 경험이다. 진정한 경험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서 세상의 모든 경험을 초월해 온다. 하나님을 사람이 없으나 은혜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자녀가 자들이 가질 있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이다.

예수의 선교사명이 하나님 나라의 임재였듯이 그분의 운명 역시 그 나라의 완성과 도래였다.

그분의 생애가 천국에 대한「이미」의 범례였듯이 그분의 부활도 장차 도래할 일에 대한「이미」의 증언이다. 그리스도는 창조의 근본일 뿐만 (3:14) 아니라 그분의 부활로 말미암아 원초적인 종말의 근본이시기도 하다.

창시자(primus)이자 동시에 원초자(prius)이신 그는 우리에게 그리스도와 주가 되신 분이시다.

신약성서는「역사적 예수」와「부할 사건」의 대면으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이 우주적 사건임을 천명한다. - L. E. Keck

초대교회는 희랍사상의 영향을 받은 영지주의(靈知主義)와 사투를 벌여야 했다.

영적인 그리스도가 물질적인 육체로 성육신 하는 것이 불가능하다는 이유로 저들은 부활을 하나의 환상이라 주장했다.

영혼이 불사(不死) 존재인데 죽었다가 살아난다는 것은 하나의 모순이라는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은 예수의 불멸성과 예수의 부활 사이에는 의미 깊은 차이점이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그들은 영지주의가 역사적 사실 안에 활동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에 근거한 기독교의 본질을 파괴한다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 대한 최초의 해답이 바로 사도신경(使徒信經 The Apostles Creed)이다.

그리스도의 탄생과 고난, 죽음과 부활은 역사라는 시간 세계 속에 자신을 계시하는 하나님 자신의 사건이다. 이로 인하여 시간세계는 영원세계와 연결되고 모든 성도가 부활로 가는 길이 열린 것이다.

부활신앙의 터전에 심어진 그 뿌리에서 떠날 때 기독교는 그 자체의 능력을 상실한다. - B. W. Anderson

예수의 부활이 가지는 의미는 종말의 예기가 묵시문학에서의 역사이해와 관련이 있다는 것이다.

사도들이 죽음 저편에 있는 불멸과 생명에 대한 모든 경험을 부활로 명명한 것은 묵시적 기대의 지평 안에서이다. 이러한 경험 안에서 그들은 그들이 믿었던 그리스도 예수를 다시 받아들인다.

이러한 기대의 영역에서 부활하신 예수의 출현은 자체의 고유한 언어를 가진다.

예수의 부활은, 그가 이전에 초월적 권위에 관해 외친 것을 신적으로 중명 하려는 것이 아니다.

부활의 의미는 예수의 생애와 더불어 종말이 시작되고 하나님께서 예수 안에 자신을 나타내셨다는 것이다. 울의 회심기사는 예수 부활이 묵시적 기대의 지평에서 얼마나 큰 종말론적 의미를 갖는가를 보여준다. - Pannenberg

묵시문학에서 부활은 실제로 옛 삶으로의 복귀가 아니라 새로운 삶의 시작인 새로운 기원의 여명(聚明)을 뜻한다. 새로운 삶의 실제는 우리의 통상적인 체험을 초월한다. 여기서 신앙은 비유적 언어로 거론되는 것이다.

하나님은 당신 자신을 예수의 부활 속에서 궁극적으로 정의하고 당신이 하나님임을 계시하셨다.

기독교의 하나님은 죽은 자들을 영원히 살리시는 하나님이시다. 그분에게는 모든 절망을 넘은 희망이 시작된다.

예수의 부활과 거기서 궁극적으로 현시(顯示)된 하나님의 다스림은 신앙적 신뢰의 최종적 근거이다.

부활은 하나님을 거슬리는 악의 세력으로부터 구원된 세계의 근거이며 시작이고 출현이다.

신앙을 실증하는 체험은 요컨대 스스로 함께 경험하는 가운데서만 가능하다.

자신을 그리스도와 함께 시작한 역사 속으로 끌어들이는 사람만이 표징적으로라도 진리를 체험하게 것이다.

진리를 행하는 자만이 빛으로 나아간다는 의미이다. (3:21). - W. Kasper

예수의 죽음과 부활은 처음부터 하나요 동일한 사건의 두 요소로 이해된다.

죽음이나 부활 모두가 성서대로 되어졌다는 것은 가지 의미를 말해주고 있다.

첫째, 이 두 가지 사건들에서 하나님이 활동하셨으며 이 사건들을 통해서 영원한 구원의 결의를 실현하셨다는 것이다.

둘째, 이 두 가지 사건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핵심적 요소들이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사건들을 통하여 전적으로 그리고 독특하게 인간에게 말씀하시고 구원받도록 부르신다는 것이다.

가지 사건들은 그것을 진심으로 감지하고 있는 모든 사람에게 결정적 의의를 갖고 있다.

이 두 사실을 전인적으로 믿는 사람들에게 그것은 같은 효력을 주시는 것이다. - Gerhard Gloege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근본적으로 기독교 신앙은 부활의 신앙이요 부활의 희망이다.

하나님은 십자가에 못 박힌 독생자를 일으키시고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없던 것을 있게 하시는 그분만의 하나님이시다.

기독교 신앙은 그 자체가 바로 부활신앙이라는 점에서 바로 참 하나님에 대한 신앙이다.

그리고 기독교는 주와 함께 죽고 함께 부활한다는 점에서 홀로 구세주이신 그리스도 신앙이다.

십자가에 박히신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다는 전무후무한 사실은 기독교 신앙의 동기요 전제이자 근거이다.

부활이란 말에는 우주적인 종말론과 그리스도인의 참된 소망이 결합되어 있음을 시사되어 있다.

초대교회의 부활절 신앙은 예수가 오직 그분의 무한한 미래와 함께 이해될 수 있다는 것을 가르쳐주고 있다. 부활 소망 안에서 생자필멸의 운명은 종결되고 인생무상은 소멸된다.

십자가에 연결된 부활 소망은 하나님의 무한 영광 속에 나타날 죽은 자의 부활과 만유의 창조로써 충만하다.  역사의 종말은 시간의 정지가 아니라 오히려 흐름이고 복된 미래의 열림이며 새로운 역사의 생성이다. - J. Moltmann

부활소망은 모든 사물과 상황과 인간을 장차 나타날 하나님의 영광 때문에 고민하게 한다.

그것은 아무 것도 자신을 정당화하면서 존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허락한 길만을 가야 하기 때문이다.

소망은 오직 하나님의 인도 안에 있을 뿐이며, 그러므로 불멸의 인내 속에서 약동한다.

소망이 십자가에 못 박힌 예수의 부활에 근거하고 있다면, 이 소망은 예수를 따르는 그 인내 속에서 자체를 증명한다.

인내만이 소망으로 인한 역사의 긴장을 이겨낼 있다. 인내는 위대한 소망의 안내자가 된다.

버림받은 상태를 극복하고 모순을 해결하며 부활의 하나님을 통하여 미래를 바라볼 때 십자가의 도는 살아 있다.

십자가를 버릴 위대한 기독교 신앙은 세상 이야기로 전락하게 된다. - J. Moltmann

우리가 부활로 간다는 것은 옛 생명의 세계로 복귀하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차원인 새 생명의 세계로 들어가는 것이다.

주님께서는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 가고 시집도 아니 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고 말씀하셨다.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신 까닭에 하나님 안에 있는 자는 누구든지 살아있다.

하나님 안에라는 복된 범주 안에는 죽음이란 것이 전혀 존재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22:32,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3:6)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하시니”

그리스도 안에도 역시 정죄가 없는 세계로써 생명의 성령의 법이 살아있는 영역이다.

승천하신 그리스도는 성도들의 영원한 처소를 예비한 후에 다시 와서 성도들을 자기에게로 영접하겠다고 말씀하셨다.

창조의 근본이요 성도들의 본향이신 주님께서 영적세계이자 물리적 세계인 하늘 도성으로 우리를 초대하신 것이다.

연합의 개념은 예수를 잠자는 자들의 첫 열매로 표현하는 고전15:23에서 가장 분명하게 표현되어 있다. 열매라는 단어는 진지하게 미래를 바라보는 모든 사람의 관심을 끈다.

바이스(Johannes Weiss) “이 작은 단어가 하나의 중차대한 명제를 포함하고 있다.”고 말한다.

첫 열매란 특별히 제사적 의미로 사용된다. 첫 열매는 농작물과 가축 전체의 대표로써 드려졌다.

그것은 전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졌음을 깨닫고 감사하는 징표이다.

열매는 유기적 연합의 개념, 대표적 예표가 전체로부터의 불가분리성을 선언하는 표상이다.

그리스도의 부활은 그 첫 열매로써 그리스도 안에 있는 모든 성도의 부활과 새 우주의 구현을 포괄적으로 약속한다.

모든 사람이 장차 생명의 부활로 나아가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아담과 연합될 경우이다. - Richard B. Gaffin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결코 분리될 수 없는 사실이다.

죽음이 없이는 어느 경우에도 부활이 있을 없고 부활이 없으면 죽음의 의미가 상실되는 까닭이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말할 때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능력을 말하는 대신 그리스도와 성도들의 연합을 강조했다. 그리스도의 십자가 수난과 영광의 부활은 인간을 영원히 살리기 위한 삼위일체 하나님의 사역인 것을 증언한 것이다.

성부의 뜻을 받들기 위해 성자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고 성자의 죽음을 살려 성부는 믿는 자를 의롭다 하셨다. 독생자의 죽음을 보는 성부의 눈물은 머리와 몸의 예정 안에서 그 머리의 죽음을 통해 몸의 죽음을 보신 것이다.

성자를 죽음으로 인도한 (9:14) 성령은 성자를 다시 살리셨고 성부의 뜻을 받들어 모든 성도를 다시 살리신다. 이를 위해 성령은 성전인 성도 안에 임하시어 (고전3:16, 고전6:19) 영생을 위한 성화와 부활을 책임지고 계신다.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8:11,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바울 신학의 중심주제인 부활은 성도들의 구원과 결부시켜 예수님의 부활 자체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제공한다.

바울이 주는 영이시니(고후3:17)도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부활 세계의 표상이며 만유의 주이심을 밝히는 것이다.

다른 보혜사라는 말로써  예수님과 성령을 임재적 기능에서 동일시 그것은 부활 하신 그리스도를 보내시겠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14:16). 주님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다시 와서 (14:18) 세상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28:20) 선언하심으로써 주님 자신이 삼위일체적 임재를 말씀하셨다.

14:20, “그 날에는 내가 아버지 안에, 너희가 안에, 내가 너희 안에 있는 것을 너희가 알리라.

부활로 인해 주님은 살려주는 영이 (고전15:45) 되셨고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으로써 임재를 책임진 것이다.

십자가 위에서 끝난 주님의 고난은 부활과 승천으로 말미암아 하나의 일관된 사건으로 이어진다.

그리스도의 승천은 거룩한 희생에 대한 성부 하나님의 대답이었다. (2:8-11)

부활은 승천의 일차적인 증언으로써 죽기까지 순종하여 이긴 사망에 대한 승리를 나타낸다.

이것은 사랑의 희생 가운데 감추어진 승리가 세상에 계시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에서 승천은 완결된 희생과 고난 가운데 간직되어 있는 원천적인 승리가 선포된다는 것이다.

복음서와 서한에서 우리에게 전해지는 메시지는 사실 세상 끝까지 전해야 할 십자가와 부활의 메시지이다.

살아계신 주님은 십자가의 흔적을 지니고 계신다. 부활과 십자가는 서로가 서로의 본질적인 것이었다.

부활이 없는 십자가는 다만 순교자의 십자가에 불과하다.

그러므로 신자들에게 십자가의 신학은 결국 그리스도의 영광의 신학인 것이다.

예수의 부활은 십자가에서 치룬 희생과 수난의 완성이요 완결이었다.

십자가가 희생제물의 인간적 비극이었지만 반대로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위업이자, 새로운 세계의 시작이었다. 그러므로 부활은 예수의 생애가 끝난 다음에 온 별개의 사건이 아니라 예수의 죽음 그 중심에서 시작된 응답이었다. 성자께서 스스로 자신을 완전히 바친 희생임과 동시에 성부께서 자비로써 철저한 헌신을 받아주신 사건이다. 이로써 인간에겐 결정적으로 하나님께 가는 길이 열렸고, 하나님은 결정적으로 인간을 포용하는 근거를 가지셨다.

십자가와 부활이 하나의 일치를 이루는 가운데 하나님의 의가 영원한 천국을 창조하는 길이 열렸다.

십자가와 부활은 결국 성도들이 영생으로 갈 수 있는 새롭고 산 길을 열어 놓은 우주적 사건의 양면인 것이다.

부활 신앙의 근원은 궁극적으로 여호와 하나님께 대한 신앙이다.

여호와는 생사를 주관하시는 초월자로써 일체 만물을 손에 넣고 주재하신다.

만유의 전체 운명은 그분에게 속하며 죽음을 넘어서까지도 무조건 신뢰할 수 있는 분이시다.

“여호와는 죽이기도 하시고 살리기도 하시며 음부에 내리게도 하시고 올리기도 하시는도다. (삼상2:6)

그래서 욥은 극심한 고통 중에서도 부르짖었다.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19:25-26) 부활은 바로 하나님 고유의 업적이요 그분 특유의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 고유의 특성을 묘사하는 용어이기도 하다.「예수를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시킨 하나님」이란 정식(定式)은 바로 신약성서 고유의 신학용어가 되었다. 예수의 부활은 하나님의 결정적인 종말론적 위업일 아니라 하나님의 종말론적 자기계시(自己啓示)이다.

, 부활에서 하나님이 계시된다. 당신의 권능으로 삶과 죽음, 존재와 비존재를 감싸시는 , 창조적인 사랑과 신의(信義) 자체이신 , 새로운 생명의 권능이신 분이시기에 절대 신뢰할 있는 분으로서의 하나님이 계시된다.

예수의 부활은, 예수에 의해 선포된 하나님 나라 복음의 본질로서의 출발이요 그 실현이다.

예수를 부활시킴으로써 하나님은 사랑의 신의를 실증하셨고 예수와 자신을 동일시하신 것이다. - W. Kasper

나사로를 부활시킨 이야기는 예수께서 죽음을 이기시는 생명의 주가 되심을 구체적으로 증거 한다.

주께서 베다니에 오셨을 나사로는 이미 죽은 사흘이라 썩는 냄새가 났다.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 하리니 네가 이것을 믿느냐” (11:25-26). 주님은 이 말씀에서 영생을 두 가지 형태로 설명하신다.

첫째는 “믿는 자는 죽어도 살리라.”는 것이다. 그것은 당시의 일반적인 신앙을 긍정하신 것이다.

다음은 “살아서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라.”고 하심으로 새롭고 놀라운 사실을 선언하신 것이다.

예수를 믿는 사람은 이미 영생을 가지고 있다. 그분 자신이 바로 부활이요 생명이기 때문이다.

5:24, “내 말을 듣고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 현재 영생을 소유하고 있기 때문에 믿는 자는 마지막 날에 부활하게 되는 것이다. 물론 나사로의 부활은 소생으로써 주님의 부활과는 전혀 다른 것이다. 다만 상징적인 사건일 뿐이다. 예수의 부활은 이 세상을 초월한 하나님의 사건이자 새로운 창조의 사건이었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긍정은 심판과 죽음을 거쳐, 그리고 그것들을 초월해서 그 목표를 이룩한다.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보다 강하다. 하나님은 십자가를 통하여 인간과 삶을 새롭게 창조하신다.

그리스도의 부활에서 생명은 승리를 얻고 죽음을 이겼다. 하나님의 사랑은 죽음을 죽이고 인간의 생명이 되었다.

성육신 하사 십자가에 죽고 부활하신 예수 안에서 인간은 새로워졌다. 그분이 인간의 새로운 원형이기 때문이다.

주님께 생긴 사건은 모든 사람의 사건이다. 결국 그분의 죽음과 부활로 새로운 인류가 창조된 것이다.

생자필멸이 유일한 답일 때 인간의 삶은 무()로 돌아가는 무상(無常)일 뿐이다.

그러나 죽음의 세력이 꺾이고 부활의 날이 온다는 것을 확신할 때 인간은 절대 긍정으로 생을 마감한다.

현재의 모든 소유를 죽음에 넘겨주지만 성도는 사망을 폐한 권능으로부터 오는 새로운 시계를 대망한다.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새로운 인류의 머리로써 영생하는 인간의 원형이 되셨다.

그것은 새로운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궁극적이고 영광스런 긍정이다.

인류는 아직 낡은 가운데 살고 있으나 낡은 것을 이미 넘어섰고, 죽음의 세계에 살고 있으나 이미 죽음을 넘어섰다. 방은 지나가지 않았지만 이미 날은 밝아오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에 의하여 심판 받고 열납 되고 새로운 생명으로 나타난 인간, 그가 곧 그리스도시며, 인류의 새로운 원형이시다.

온 천하를 끝까지 인도하는 것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 자체이다.

죽음과 부활로 이루신 하나님의 의는 하나님과 영원히 화해된 세계를 이루어 것이다. - D. Bonhoeffer.

예수의 부활은 그가 자기 죄로 죽은 것이 아님을 선포한다.

하나님은 그에게 죄인의 형상을 입혔으나 그는 결코 죄인으로써 죽은 것이 아니다.

그의 죽으심은 믿는 자를 의롭다 하기 위해 너와 나의 입장에서 너와 나의 죽음을 죽어주신 것이었다.

죄를 알지도 못한 자가 죄인이 되어 죽은 것은 의를 알지도 못한 자를 영원히 의롭다 하시기 위함이었다.

그러나 십자가에 박힌 그는 죽음에서 부활했을 뿐만 아니라 스스로 무덤에서 일어나신 것이다.

그는 시체로써 생명을 받았을 뿐만 아니라, 시체를 생명으로 일으키셨다.

10:18은 “나는 버릴 권세도 있고 다시 얻을 권세도 있느니라.”는 그분의 말씀을 전한다.

폐일언하고 예수의 부활은 그분이 바로 하나님이셨음을 확증하신 것이다.

하나님이 지신 십자가에서 우리는 은혜의 원천이 얼마나 풍성한가를 본다.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그에게서「죽은 자를 일으키는」하나님의 전능하심이 나타났다는 고백을 의미한다.

부활은 히브리적 관점에서 보면 성서적 드라마의 극치를 이룩한 요소이다.

하나님은 부활의 사건을 통하여 십자가에 박힌 예수가 바로 인류의 구세주이심을 증명하셨다.

초대교회가 부활에서 얻은 확신은 하나님이 죄와 사망의 법을 폐하사 새로운 생명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이 시점에서 인간 차원의 수평선과 하나님의 차원 수직선이 교차한다.

인간의 지평에서 본 예수는 빌라도의 사형선고로 죽었지만 하나님의 답은 하나님이 보내시고 살리셨다는 것이다.

예수의 부활이 말해주는 것은 육신의 죽음보다 더 무서운 죽음에서 인간을 해방했다는 확신이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고 창조주에 의해서만 생명의 충만을 얻게 되어 있다면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키는 불순종은 자신의 생명을 파괴하는 것이다.

 

부활에 관한 성서의 증언

부활은 전혀 하나님의 능력으로 인한 것이다.

2:32, “이스라엘 사람들아 말을 들으라. 너희도 아는 바에 하나님께서 나사렛 예수로 권능과 기사와 표적을 희 가운데서 베푸사 너희 앞에서 그를 증거하셨느니라. 이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다 이 일에 증인이로다.

8:11,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고후4:14, “주 예수를 다시 살리신 이가 예수와 함께 우리도 다시 살리사 너희와 함께 앞에 서게 하실 줄을”

벧전1:21, “너희는 저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시고 영광을 주신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믿는 자니 너희 믿음과 소망이 하나님께 있게 하셨느니라.

예수는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부활하셨다.

4:25, “예수는 우리 범죄함을 위하여 내어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

벧전3:21,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세례라 육체의 더러운 것을 제하여 버림이 아니요 오직 선한 양심이 하나님을 향하여 찾아가는 것이라.

죽은 자의 부활은 믿는 자들의 살아있는 소망이다.

고전15:12,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다 전파되었거늘 너희 중에서 어떤 이들은 어찌하여 죽은 가운데서 부활이 없다 하느냐?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벧전1:3, “찬송하리로다 우리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많으신 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소망이 있게 하시며”

부활은 사도들이 전한 복음의 주제였다.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없었음이라.

2:31, “미리 보는 고로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을 말하되 저가 음부에 버림이 되지 않고 육신이 썩음을 당하지 아니하시리라 하더니 예수를 하나님이 살리신지라 우리가 일에 증인이로다.

5:30, “너희가 나무에 달아 죽인 예수를 우리 조상의 하나님이 살리시고 이스라엘로 회개케 하사 사함을 얻게 하시려고 그를 오른손으로 높이사 임금과 구주를 삼으셨느니라. 우리는 일에 증인이요 하나님이 자기를 순종하는 사람들에게 주신 성령도 그러하니라 하더라.

이교도와 불신자는 부활의 소망이 없다.

2:12, “그 때에 너희는 그리스도 밖에 있었고 이스라엘 나라 밖의 사람이라 약속의 언약들에 대하여 외인이요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이더니”

성서는 여러 가지의 부활을 말한다.

그리스도의 부활 : 8:31, “인자가 많은 고난을 받고 장로들과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에게 버린바 되어 죽임을 당하고 사흘 만에 살아나야 것을 비로소 저희에게 가르치시되”

신자들의 영적 부활 : 2:12, “너희가 세례로 그리스도와 함께 장사한바 되고 죽은 자들 가운데서 그를 일으키신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안에서 함께 일으키심을 받았느니라.

악인의 부활 : 24:15,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성서는 무한 축복인 부활의 근거를 말한다.

하나님의 권능 : 고전6:14, “하나님이 주를 다시 살리셨고 또한 그의 권능으로 우리를 다시 살리시리라.

그리스도의 부활 : 고전15:13, “만일 죽은 자의 부활이 없으면 그리스도도 다시 살지 못하셨으리라. 그리스도께서 만일 다시 살지 못하셨으면 우리의 전파하는 것도 헛것이요 너희 믿음도 헛것이며 우리가 하나님의 거짓 증인으로 발견되리니 우리가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셨다고 증거하였음이라 만일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것이 없으면 하나님이 그리스도를 다시 살리시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리스도와의 연합 : 6:5, “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을 본받아 연합한 자가 되리라. 8:11,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서는 부활의 성취자로서 삼위일체 하나님을 증거한다.

성부 하나님 : 2:24, “하나님께서 사망의 고통을 풀어 살리셨으니 이는 그가 사망에게 매여 있을 없었음이라.

성자 하나님 : 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성령 하나님 : 8:11,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의 영이 너희 안에 거하시면 그리스도 예수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신 이가 너희 안에 거하시는 그의 영으로 말미암아 너희 죽을 몸도 살리시리라.

성서는 부활의 시기에 대하여 다양하게 표현한다.

마지막 날 : 6:39,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을 행하려 함이니라. 나를 보내신 이의 뜻은 내게 주신 중에 내가 하나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는 이것이니라. 6:44,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면 아무라도 내게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

주 강림하실 때 : 살전4:13, “형제들아 자는 자들에 관하여는 너희가 알지 못함을 우리가 원치 아니하노니 이는 소망 없는 다른 이와 같이 슬퍼하지 않게 하려 함이라. 우리가 예수의 죽었다가 다시 사심을 믿을진대 이와 같이 예수 안에서 자는 자들도 하나님이 저와 함께 데리고 오시리라. 우리가 주의 말씀으로 너희에게 이것을 말하노니 주 강림하실 때까지 우리 살아 남아 있는 자도 자는 자보다 결단코 앞서지 못하리라.

마지막 나팔소리가 날 때 : 고전15:51, “보라 내가 너희에게 비밀을 말하노니 우리가 잠잘 것이 아니요 마지막 나팔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하리니 나팔 소리가 나매 죽은 자들이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고 우리도 변화하리라”

구약성서에 나타난 부활사건들은 현생으로의 소생이지만 참된 부활의 존재를 미리 말해준다.

사렙다 과부의 아들 : 왕상17:17-24

수넴 여인의 아들 : 왕하4:32-35

엘리사의 뼈에 닿은 시체 : 왕하13:21

구약에 나타난 종말론적 부활의 희망은 소중한 점진계시였다.

모세의 노래 : 32:39, “이제는 내가 그인 알라 나와 함께 하는 신이 없도다. 내가 죽이기도 하며 살리기도 하며 상하게도 하며 낫게도 하나니 손에서 능히 건질 없도다.

아브라함의 대망 : 11:19,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 비유컨대 죽은 가운데서 도로 받은 것이니라.

믿음의 조상들의 대망 : 11:8,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믿음으로 저가 외방에 있는것 같이 약속하신 땅에 우거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과 야곱으로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하나님의 경영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니라.

에녹의 승천 : 5:24,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 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엘리야의 승천 : 왕하2:11, “두 사람이 행하며 말하더니 홀연히 불수레와 불말들이 사람을 격하고 엘리야가 회리바람을 타고 승천하더라.

부활에 관한 욥의 소망 : 19:25, “내가 알기에는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후일에 그가 위에 서실 것이라. 나의 가죽, 이것이 썩은 후에 내가 육체 밖에서 하나님을 보리라.

시편기자가 이해한 부활 : 16:9, “이러므로 마음이 기쁘고 영광도 즐거워하며 육체도 안전히 거하리니 이는 영혼을 음부에 버리지 아니하시며 주의 거룩한 자로 썩지 않게 하실 것임이니이다.

17:15, “나는 의로운 중에 주의 얼굴을 보리니 때에 주의 형상으로 만족하리이다.

부활에 관한 예언들 : 25:8,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백성의 수치를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26:19, “주의 죽은 자들은 살아나고 우리의 시체들은 일어나리이다 티끌에 거하는 자들아 너희는 깨어 노래하라 주의 이슬은 빛난 이슬이니 땅이 죽은 자를 내어 놓으리로다. 12: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지혜 있는 자는 궁창의 빛과 같이 빛날 것이요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자는 별과 같이 영원토록 비취리라. 13:14, “내가 저희를 음부의 권세에서 속량하며 사망에서 구속하리니

사망아 재앙이 어디 있느냐 음부야 멸망이 어디 있느냐 뉘우침이 목전에 숨으리라.

복음서는 주님의 임종 시 성도들의 부활이 있었음을 증언한다.

27:52,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 예수의 부활 후에 저희가 무덤에서 나와서 거룩한 성에 들어가 많은 사람에게 보이니라.

성서는 죽은 자의 부활을 예언한다.

그리스도의 재림 시 죽은 자가 모두 부활함 : 5:28, “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4:15, “저희의 기다리는바 하나님께 향한 소망을 나도 가졌으니 의인과 악인의 부활이 있으리라 함이라. 고전15:20,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가운데서 다시 살아 잠자는 자들의 열매가 되셨도다.

사망이 사람으로 말미암았으니 죽은 자의 부활도 사람으로 말미암는도다.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남 : 살전4:16, “주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로 친히 하늘로 좇아 강림하시리니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자들이 먼저 일어나고” 20:4,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 ( 나머지 죽은 자들은 천년이 차기까지 살지 못하더라) 이는 첫째 부활이라.

불신자의 부활은 영원한 형벌을 위한 것임 : 10:28,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시는 자를 두려워하라.

부활체에 대한 성서의 기록은 너무나도 중요하다.

보고 만질 수 있음 : 24:39, “내 손과 발을 보고 나인줄 알라 나를 만져보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20:27, “도마에게 이르시되 손가락을 이리 내밀어 손을 보고 손을 내밀어 옆구리에 넣어보라 그리하고 믿음 없는 자가 되지 말고 믿는 자가 되라. 21:12, “예수께서 가라사대 와서 조반을 먹으라 하시니 제자들이 주신줄 아는 고로 당신이 누구냐 감히 묻는 자가 없더라. 예수께서 가셔서 떡을 가져다가 저희에게 주시고 생선도 그와 같이 하시니라.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덧입은 것임 : 고전15:48, “무릇 흙에 속한 자는 흙에 속한 자들과 같고 무릇 하늘에 속한 자는 하늘에 속한 자들과 같으니 우리가 흙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은 같이 또한 하늘에 속한 자의 형상을 입으리라. 고후5:1, “만일 땅에 있는 우리의 장막 집이 무너지면 하나님께서 지으신 손으로 지은 것이 아니요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 우리에게 있는 아나니 과연 우리가 여기 있어 탄식하며 하늘로부터 오는 우리 처소로 덧입기를 간절히 사모하노니 이렇게 입음은 벗은 자들로 발견되지 않으려 함이라. 장막에 있는 우리가 같이 탄식하는 것은 벗고자 함이 아니요 오직 덧입고자 함이니 죽을 것이 생명에게 삼킨바 되게 하려 함이라.

썩지 아니할 영광의 몸임 : 고전15:42, “죽은 자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사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신령한 몸이 있느니라. 3:21, “그가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케 하실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케 하시리라. 요일3:2, “사랑하는 자들아 우리가 지금은 하나님의 자녀라 장래에 어떻게 것은 아직 나타나지 아니하였으나 그가 나타내심이 되면 우리가 그와 같을 줄을 아는 것은 그의 계신 그대로 것을 인함이니”

다시 죽지 아니함 : 20: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부활에 대한 여타의 말씀들도 이야기들도 우리는 귀담아 들을 필요가 있다.

부활이 헬라인에게는 걸림돌이 되었다. (17:32)

대제사장들이 예수의 부활을 왜곡시켰다. (28:12-15)

사두개인들은 부활이 없다고 했다. (22:23-28)

예수의 제자들도 처음에는 그의 부활을 이해하지 못했다. (16:21-22)

중생에 대해 비유적으로 사용되었다.

6: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니라.

2:1, “너희의 허물과 죄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이스라엘의 회복에 대해 상징적으로 사용되었다. (37:1-14, 11:11)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글쓴이 : 영심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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