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임례 집사를 비롯해 23명이 순교한 이곳은 일제시대에 복음이 전해졌다고 한다.
해방이 되면서 교인들은 교회에 가기 위해 멀리 걸어 다녀야 했던 두암 마을에 교
회를 세우게 된다. 선교사의 지원을 받아 김용은 전도사가 윤임례 집사 가정을
중심으로 단촐한 기와집에서 성도들이 함께 모여 기도하며 교회를 시작하게 되었다.
교회가 창립된 지 얼마 안 되어 임동선 전도사를 초청해 부흥집회를 가졌는데 평양
에서 공산주의를 접했던 임전도사는 공산주의에 대해 매우 비판적이었으며 이 날
집회도 비판적인 내용을 말하였다.
6.25전쟁이 일어나자 정읍에도 공산군이 들어왔고 두암 마을 주변은 공산군과 반공
세력간의 총격전이 수시로 벌어졌다.
두암 마을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다는 이유로 공산군에게는 눈에 가시와 같은 존재로
치부되었고 특히 임동선 전도사를 초청해 부흥집회를 열었다는 이유로 김용은 전도사
를 잡기위해 가족과 성도들을 위협하고 날마다 가택수색을 벌이면서 예배 중지령까지
내렸다. 그러나 성도들은 굴하지 않고 끌려가 고문을 당하면서까지 교회를 굳건히 지켰
다. 마침내 몽둥이와 대창을 든 공산주의자들은 성도들과 그 가족들 심지어 아이들까지
개 패 듯 했고 아이들의 울부짖는 소리는 마을 밖까지 들렸다고 한다.
결국 윤집사와 아이들은 순교했고 김용은 전도사 동생 김용채 집사는 총에 맞아 고부로
옮겨 치료하던 중 순교하였으며 교회와 교인들의 집안에 짚을 넣고 불을 질러 태워 버렸다.
그 불태운 재 때문에 며칠 동안 동네 우물물을 먹을 수 없었다고 주민들은 증언하고 있다.
이 날 학살된 교인은 모두 23명으로 후에 공산군이 철수한 후 서명선 목사와 김용례 사모가
두암 마을을 방문해 시신을 수습하여 매장했다고 한다.
시신 수습과정에서 윤임례 집사는 무릎을 굽힌 채 머리 뒤쪽에 칼자국이 있었다고 한다.
죽음에 앞서 기도하다가 뒤에서 칼을 맞아 순교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순교의 피는 두암 교회의 귀중한 밑거름으로 작용했다.
윤임례 집사의 아들인 김용은 목사와 고 김용칠 목사 형제는 성결교회 총회장을 역임 하는 등
교단 발전에 헌신하였으며 서명선 목사를 비롯해 20여명이 넘는 목회자가 배출되었다.
하지만 교회는 쉽게 복구되지 못했다.
전쟁으로 교회가 불타고 성도들은 대부분 순교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1964년 두암 마을 출신인 김태곤 전도사가 주일학교를 열면서 두암 교회는 재건되었고
그 후 교회를 새로 견축하였고 가매장 했던 순교자들의 무덤을 교회 동산으로 이장하고
"순교자의 묘"로 합장하였다. 1994년에는 순교자 기념교회당이 순교자 묘지 옆에 세워졌고
순교자 기념탑도 아름답게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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