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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휴거로 가는 신앙 - 천안은하교회 정현대 목사님

새사람1 2013. 5. 20. 20:54

2013 5 19              휴거로 가는 신앙

 

 

24:40. 그때에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41. 두 여자가 매를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42.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날에 너희 주가 임할는지 43. 너희가 알지 못함이니라 너희도 아는 바니 만일 집 주인이 도적이 어느 경점에 올 줄을 알았더면 깨어 있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4. 이러므로 너희도 예비하고 있으라. 생각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17: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두 남자가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7. 저희가 대답하여 가로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가라사대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6:54.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영생을 가졌고 마지막 날에 내가 그를 다시 살리리니 55. 내 살은 참된 양식이요 내 피는 참된 음료로다. 56. 내 살을 먹고 내 피를 마시는 자는 내 안에 거하고 나도 그 안에 거하나니 57.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것 같이 나를 먹는 그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

 

 

휴거성도와 환란성도.

인류역사는 칠년 대환란(大患亂)으로 마감된다. 세상만사는 창조주의 심판대에 서야 한다는 것이다.

큰 그림으로 볼 때 성서는 현재의 신자들이 역사의 종말과 더불어 세 그룹으로 나뉜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 일부는 음녀에 소속되고 일부는 환란 전에 휴거되며 일부는 환란을 거쳐 영생으로 간다는 것이다.

주님은 자신이 재림하실 때를 노아(Noah)의 때(Lot)의 때와 같으리라고 말씀하셨다. (24:37, 17:28)

 

휴거로 간다는 것은 선별처리로써 방주에 탄 노아의 가족처럼 특별히 선택되어 별도로 취급되는 개념이다. 환란을 통과한다는 것은 일괄처리로써 노아의 홍수(洪水)에 다 함께 매몰되는 경우이다.

노아의 홍수 하나님을 믿은 자들 중에 노아의 가족만이 방주에 타는 문제에 순종했다.

불순종 한 자들은 사후에 별도처리 되는 기회가 주어지기까지 음부의 옥에 갇혀 있었다는 것을 성서는 말하고 있다.

 

벧전3:19-20), “저가 또한 영으로 옥에 있는 영들에게 전파하시니라. 그들은 전에 노아의 날 방주 예비할 동안 하나님이 오래 참고 기다리실 때에 순종치 아니하던 자들이라. 방주에서 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은 자가 뿐이니 겨우 여덟 명이라.

 

4:4의 흰옷을 입고 금 면류관을 쓴 24장로는 우주적 교회의 대표들을 가리키는 것으로 해석된다. 휴거된 교회는 그리스도의 심판대를 거쳐 (고후5:10) 혼인예식을 가진 후에 (19:7) 지상재림에 참여한다. 휴거된 교회의 영원한 처소는 새 예루살렘으로써 (21:2) 하나님이 함께 거하시는 하늘 도성이다. (21:10)  환란 성도는 7년 대 환란을 겪고 순교한 후 부활하여 새 하늘 새 땅으로 간다.

 

7:9“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라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하늘 보좌 앞과 어린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찬미하는 모습을 말한다.

24장로 중에 하나는 흰옷 입은 자들이 큰 환난에서 나오는 자들로써 어린양의 피에 옷을 씻었다고 말한다. 휴거로 성도들은 면류관(crown of gold) 쓰는 반면 환란성도들은 종려나무(palm tree) 가지를 들고 있다.

종려나무 가지는 승리와 (12:13, 7:9) 의인의 번성을 (92:12) 상징한다.

 

20:4은 첫째 부활에 참여하는 성도들을 휴거된 성도들과 환란성도들로 구분하여 기록하고 있다.

전반부의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는 휴거된 자들이다.

후반부의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년 동안 왕노릇 하니”에서「목 베임을 받은 자」와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은 환란성도를 명시하고 있다.

이 말씀은 휴거로 간 성도들과 환란성도를 분명히 구분하고 있다.

 

우주(宇宙)와 인류(人類)는 영원세계로 가기 위해 천년왕국(千年王國)이란 예비기간을 거칠 것이다.

영생부활의 영원세계로 가기 원하는 자는 누구든지 반드시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생명으로 얻어야 한다.

6:56, “내 살을 먹고 피를 마시는 자는 안에 거하고 나도 안에 거하나니, 살아계신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시매 내가 아버지로 인하여 사는 같이 나를 먹는 사람도 나로 인하여 살리라.예수 그리스도를 생명으로 영접하는 것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살기 위한 수순이다.

재림 후에 일어날 일들로는 죽은 자의 부활과 (고전15:22-23, 살전4:16) 공중 휴거 (살전4:I7), 심판과 보상(22:I2), 새 하늘 새 땅의 도래 (벧후3:10-13), 하늘도성의 임재 (21:2) 등을 있다.

 

이 세상은 우주적인 교회가 주님의 몸을 구성하기 위해 공중으로 옮겨감으로써 종말이 시작된다.

기독교의 구원은 몸의 부활로써 완결되고 몸의 부활은 절대적으로 그리스도와 재림과 결부되어 (3:4) 있다.

새 예루살렘은 하늘도성으로써 영원세계와 시간세계가 통일되는 새 우주의 중심이자 하나님의 영원한 처소가 된다.

그 하늘도성에 머리와 몸이 통일된 우주적 생명체, 곧 휴거된 교회가 영원히 하나님과 함께 거한다.

새 하늘 새 땅은 이스라엘과 휴거 이후에 구원되는 모든 성도들의 거주지가 된다. (21:24).

성서는 천년왕국기간에도 자연인의 거주와 구원사역이 있을 것을 말한다. (25:32-33, 20:7-10)

땅의 백성들은 하나님께 대한 경배를 위하여 거룩한 성을 방문하는 영광을 얻는다.

 

그리스도인이라면 누구나 음녀와 신부의 차이점을 깊이 생각하고 정신 차려야 한다.

적그리스도 계열인 교회가 있다는 사실은 신자들의 영원한 운명을 좌우하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음녀의 존재는 계시록에 (17:5,15) 등장한다. 세상과 간음하는 것은 하나님의 원수라고 야고보서는 경고한다.

4:4,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게 하는 것이니라.

현재 이 땅에도 자기들을 교회라고 부르면서 적그리스도 계열에 속한 이단들이 많이 있다.

주 예수 그리스도 외에 메시아가 따로 없음을 모든 신자는 반드시 기억해야 한다.

살후2:7, 불법의 비밀이 이미 활동하였으나 지금 막는 자가 있어 중에서 옮길 때까지 하리라.

 

예수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서 오시는 것과 <공중강림> 교회와 함께 오시는 것은 <지상재림> 분명히 다르다. 공중강림은 대환란 전에 신부의 휴거를 위해 오시는 것이고 지상재림은 대 환란 끝에 심판 주로서 오시는 것이다.

우리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나실 그 때에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중에 나타나리라. (3:3).

공중 재림은 신부를 위해 도적같이 오시는 것이고 지상 재림은 천하만민이 볼 수 있게 왕으로써 오시는 일이다. 공중 들림을 위해서는 거룩한 행실과 경건함으로 예비하고 있어야 한다. 날이 언제인지 모르기 때문이다. 지상 재림을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적그리스도에 의한 순교를 각오해야 한다. 환란을 통과해야 하기 때문이다.

21:36,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

 

 

이긴 자의 참된 의미

이긴 자」의 의미를 바로 아는 것은 참으로 중요하다. 거짓된 사기꾼에게 미혹되지 않기 위해서이다.

계시록 2~3장은 이기는 자들에게 축복이 약속된다. 여기서 이기는 자들은 바로 믿는 성도들을 가리킨다. 오늘날 땅에 자기를 가리켜 이긴 자라고 선전하는 정신 나간 사람이 있다고들 한다.

자기를 은근히 메시아의 반열에 올려놓으려는 거짓된 주장이다.

인류 역사에서 참으로「이긴 자」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분 밖에 없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신자들이「이긴 자」를 따라「이기는 자」들이 되기를 바라신다.

주께서 먼저 하신 일은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진 시험을 광야에서 이겨주는 일이었다.

그리고 이 일은『자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사망을 폐하신 승리』로 이어졌다. 여기서 부활이 오기 때문이다. 그래서 인생 일생의 최대 과제는 이긴 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얻고 그 안에서 발견되는 (3:8) 일이다. 아무 것이나 믿고 아무나 따라가면 반드시 영원히 울며 후회할 날이 올 것이다.

거짓 목자들이 자기를 미화할 때 신자들은 필히 사도 바울 자신이 한 말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고전1:13, “바울이 너희를 위하여 십자가에 박혔으며 바울의 이름으로 너희가 세례를 받았느뇨?

 

인류역사에서 최초로 주어진 사활의 문제는 하나님 말씀에 관한 문제였다.

성서는 에덴동산 중앙에 생명과(生命果)선악과(善惡果)가 있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2:9)

하나님께서는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말씀하셨다. (2:17).

사탄의 말은 선악과를 먹으면 눈이 밝아져 선악을 아는 일에 하나님처럼 되기 때문에 못 먹게 하신다는 것이었다. 그 말을 듣고 선악과나무를 본즉 먹음직하고 보암직하고 지혜롭게 할 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였다. 그래서 하와는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아담에게도 주어 그 실과를 먹게 했다.(3:6) 하나님께서는 불순종한 아담에게 너는 흙이니 흙으로 돌아갈 것이니라.생자필멸의 운명을 선고하셨다. 아담은 하나님처럼 된다는 거짓에 속아 선악과를 먹었다. 오늘날도 세상 종교는 인간이 신()이 되는 길을 선호한다.

 

성육신하여 이 우주 안에 오신 그리스도는 아담이 진 시험을 이겨 인간이 영원히 사는 길을 열어놓으셨다.

광야의 시험은 신자들이 바로 알고 본받아야할 예수의 정신적 투쟁(鬪爭)의 기록이다.

그것은 예수의 메시아 성격을 결정하는 것이며 그가 가져올 하늘나라의 성격을 규정하는 사건이었다.

그는 스스로 시험을 받아 시험에 이기는 길을 우리에게 보이고자 성령에 이끌리어 광야로 가셨다.

예수는 이 세상의 대 의문에 맞서 절대의 답을 찾아 주기 위해 적막공산(寂寞空山)에 가신 것이다.

버려진 광야에서의 40 간의 굶주림은 죽음에 이르는 고통이었다.

인류의 죄에 대한 슬픔이 그가 먹은 양식이었고 십자가를 지기 위한 소명이 그가 마신 음료였다.

 

유다 광야는 하나님을 찾는 자들을 위해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천연의 수도원(修道院)이라 한다.

예루살렘 동쪽의 150x50 평방 지역으로 급경사를 이루어 사해(死海) 내려가는 곳이다.

이스라엘 역사는 광야를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다. 광야는 이스라엘 위인(偉人)의 양성소였기 때문이다.

모세, 엘리야, 아모스, 세례 요한, 사도 바울 등등 많은 사람이 광야에서 하나님의 뜻과 길을 배웠다.

누구든지 참된 신자가 되려면 반드시 번은 광야에 가야한다. 아니 이 세상을 하나의 광야로 인식해야 한다. 그리고 거기서 반드시 하나님중심주의(神本主義)를 선택해야 한다.

그리스도는 말씀으로 사탄을 물리치고 시험을 극복함으로서 사탄을 이기셨다.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따라갈 때만 영원히 사는 문이 열린다.

아담은 진심으로 자기가 전생(全生)을 하나님께 바치기를 원하는지 아닌지를 시험 받았다.

아담은 독자노선을 선택함으로서 영원히 죽는 길을 인류에게 남겨놓았다.

이제 우리는 십자가에서 주님이 열어주신 새롭고 산 길 만이 영생으로 가는 오직 한 길임을 기억해야 한다.

 

시험은 모든 사람에게 임한다. 그러나 사람에 따라 시험은 다양하다.

영웅호걸(英雄豪傑)이나 종교의 창시자들을 시험할 마귀는 절세의 미인(美人) 이용했다.

그러나 예수의 시험은 전혀 달랐다. 미인을 가지고 시험하기에는 그분은 너무도 거룩한 분이셨기 때문이다.

예수의 마음에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께 대한 사랑과 인류에 대한 눈물 두 가지 뿐이었다.

하나님의 영원하신 목적을 위해 성육신 하신 그리스도의 정신은 너무 높았고 그분의 눈은 너무 거룩했다. 그래서 광야의 시험은 예수 특유의 메시아 시험이었다.

우주와 인류를 영원히 살릴 수 있는 중차대한 시험은 그 핵심이 제1계명에 있는 것이다.

 

세례 후 물에서 올라올 때 예수는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는 음성을 들었다. 

그래서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명하여 이 돌들이 떡덩이가 되게 하라.”고 사탄은 유혹했다.

이것은 “너의 신적 능력을 사용하여 배고픔을 면하라. 그리고 백성들의 민생고를 해결해라. 자선을 행하는 , 이것은 가장 실제적인 의미에서 세상의 메시아(Messiah) 해야 일이다.”는 의미였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 하였느니라.”고 예수는 대답했다.

예수는 “하나님이 허락하지 않는 빵을 먹느니 차라리 죽음의 길을 가겠다.”는 것이었다.

사람은 확실히 빵이 필요하다. 그러나 빵만으로는 살 수 없다.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예수는 하나님을 보여주며 하나님의 의를 전하고 스스로 생명의 떡이 되어 영생을 나누어 주겠다는 것이다.

 

두 번째 시험은 성전 꼭대기에서 뛰어내리는 일이었다.

사탄은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고 했다. 하나님의 천사들이 네 발을 붙든다는 것이었다. 사탄은 한편으로는 하늘 아버지의 사랑을 시험하였고 한편으로는 잘못된 전도의 방법을 제시했다. 성전에서 뛰어 내리면 단번에 군중의 우상이 되고 영웅이 된다. 표적을 행하면 사람들이 구름처럼 모여들 것이다.

종교인들은 기적을 좋아한다. 신이 되고자 했던 사탄의 생각이 오늘날에도 신자들 속에서 꿈틀거린다.

전도의 대업(大業), 차고 넘치는 교회, 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인가! 그러나 아깝게도 예수는 이 길을 포기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대신 하나님의 말씀에 순응하는 것이 신앙이다. 민중이 좋아하는 넓은 길은 멸망으로 간다.

하나님께 택함을 입기 위해 사람에게 버림받는 길을 주님은 가신 것이다. (벧전2:4)

세상에서 가장 외로운 길, 그것이 영생으로 가는 좁은 길이었다.

그래서 예수의 대답은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을 믿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믿는 것이다. 기적과 표적을 따라가는 것은 불신앙이다.

 

세 번째 시험에서 사탄은 예수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며 말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예수는 만왕의 왕이 되도록 예언된 분이셨다. 왕으로 오신 것이다. 왕은 천하만국을 필요로 한다.

그래서 악마는 예수 더러 이 세상의 왕이 되라 유혹했다.

“당신이 하나님의 아들이자 메시야인 것을 나도 안다. 서둘러 정치력을 발휘하라. 먼저 병력, 외교, 내치로서 세계를 통일하고 당신의 나라를 세우라. 다만 나한테 듣고 나에게 절만 하면 나는 당신의 사업을 이루어줄 것이다. 이에 예수는 “사단아 물러가라.”고 대답했다. 하나님의 나라를 건설함에 있어서 사탄의 힘을 빌려 쓸 일이 아닌 것이다. 시간이 걸리고 죽음의 길이라 하더라도 하나님 나라는 반드시 하나님께서 보여주시는 방법으로만 건설해야 한다.

오직 하나님의 의, 곧 하늘 공의와 하늘 사랑으로써만 하나님 나라를 세워야 한다.

세상의 수많은 나라들이 찬란한 기치를 내걸었지만 하나같이 파멸의 길을 갔고 지금도 가고 있다.

세상의 영웅들이 사회정의와 지상낙원을 부르짖지만 사탄의 방법으로는 영원한 나라는 세울 수가 없는 것이다.

 

자선사업에 의하지 않고, 기적으로 하지 않고, 정략을 버리고서 예수는 무엇으로 세상을 구원하려 했는가?  단순한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야 한다. 그리고 자신의 목숨으로 이것을 증명하려 하셨다.

사람은 오직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말씀으로 살아야만 하는 문제였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영생과 하나님의 나라를 가져올 수 있는 유일한 권능이요 수단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인간 본연의 모습이 어떠한가를 확인시켜주기 위해 종종 인간을 시험하신다.

결국 하나님 말씀이 내 인격과 삶의 본질인가를 신자는 확인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만이 썩지 않는 씨이다. 세상 종교와 철학은 언젠가는 썩는 씨이다.

시간이 걸려도, 길이 멀고 험해도, 사람들에게 인기가 없어도,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 따라가야 한다.

그것이 바른 기독교요 신앙의 정도를 걷는 것이다. 정도를 따르는 것만이 최후의 승리를 가져온다.

 

예수가 받은 시험은 어디까지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으며 또한 하나님으로부터 벗어날 수는 없는가에 대한 것이었다. 이것은 인기주의를 위한 유혹이었다. 인기주의는 언제나 실패하는 승부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자선이나 기적이나 정략으로 따라 갈 수 없다.

하나님이 요구하는 영생의 길은 고난의 자기부인과 옛사람의 죽음만으로 갈 수 있는 것이다.

생명으로 들어가는 문은 좁고 협착하다. 그 문은 실로 예수에게도 좁은 것이었다.

악마의 유혹을 다 물리치고 나서 예수에게 남은 것은 무엇이었는가?

오직 하나 십자가에 죽는 것뿐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살리기 위해 자기 목숨으로 그것을 인치는 일이었다.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식을 찾으나 구원을 얻는 자에게는 십자가의 도가 하나님의 능력이 된다.

예수의 십자가는 우주를 영원히 보존하고 인류를 영생부활로 살리기 위한 절대의 대 사건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아멘 하는 것은 언제나 목숨을 다한 진실 밖에 없는 것이다.

하나님의 뜻에 부합하는 것, 그것이 참된 신앙이다. 위대한 예수의 길인 것이다.

 

 

휴거로 가는 신앙의 조건들

첫째 필수 조건 : 하나님 중심의 신앙

신본주의(神本主義)신앙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믿음이고 인본주의(人本主義)신앙은 세상 영광을 구하는 신앙이다. 천국(天國)은 하나님의 이름이 영화로운 세계이며 창조주로써의 거룩한 뜻이 영원히 구현되는 나라이다.

그러기 위해서 오늘의 신앙도 하나님의 뜻을 추구하고 구현하려는 정신을 갖고 있어야 한다.

신본주의신앙은 타자(他者)를 위한 창조주의 속성에서 자아(自我)의 죽음을 기본으로 하는 신앙이다.

그것이 영원한 새 계명이 (13:34) 구현될 수 있는 절대원리이기 때문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완성되는 우주를 지향하고, 세상 신은 인류사회에서의 현재적 영광을 구한다.

신본주의는 사람에게 버림받아 하나님을 얻는 길이고 인본주의는 사람을 얻기 위해 하나님께 버림받는 길이다.

신본주의신앙은 나도 십자가에 함께 죽는 길이고 인본주의신앙은 주님 죽은 십자가로 만족하는 길이다.

인생무상을 벗으려면 반드시 이 세상에서 가장 외로웠던 분을 만나야 한다.

하늘과 땅 사이에 홀로 매달려 증오와 멸시 속에서 죽을 때 골고다 언덕은 붉은 피로 물들고 있었다.

 

 

둘째 필수 조건 : 주와 함께 죽은 신앙.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옛 창조에서 새 창조로 들어가는 우주적 전환점이요 대 사건이다.

예수 그리스도 자신의 십자가 죽음으로 생자필멸의 법과 원리인 죽음 자체를 폐했기 때문이다. (2:14,)

창조주의 창조는 부활로 성도들의 인격을 사람으로 창조하는 데서 시작된다.

신자가 골고다 십자가에 함께 못박혀 영원한 부활로 가는 것을 성서는 (고전1:18) 십자가의 도라고 말한다.

고후5:14, “우리가 생각건대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2:19, 내가 율법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향하여 죽었나니 이는 하나님을 향하여 살려 함이니라.

2:20,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것이 아니요 오직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5:24,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정과 욕심을 십자가에 박았느니라.

6: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뇨?

6:8, 만일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으면 또한 그와 함께 살줄을 믿노니

6:11, “이와 같이 너희도 너희 자신을 죄에 대하여는 죽은 자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대하여는 자로 여길찌어다. 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2:20, 너희가 세상의 초등 학문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죽었거든 어찌하여 세상에 사는 것과 같이 의문에 순종하느냐?

십자가의 도는 영생으로 가는 새롭고 산 길이다. 십자가는 영생으로 가서는 안 될 것들을 걸러낸다.

고전1:18, “십자가의 도가 멸망하는 자들에게는 미련한 것이요 구원을 얻는 우리에게는 하나님의 능력이라.

10:19,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예수의 피를 힘입어 성소에 들어갈 담력을 얻었나니 길은 우리를 위하여 휘장 가운데로 열어 놓으신 새롭고 길이요 휘장은 저의 육체니라.

 

 

셋째 필수 조건 : 항상 깨어있는 신앙

세상 돌아가는 일들을 바라보며 성도들은 늘 깨어 있어야 한다.

깨어 있기 위해서는 항상 성서를 읽으면서 기도하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등한히 여기는 것은 바로 하나님을 등한히 여기는 것이다. (딤후3:15)

26:41,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그러면서 성서는 스스로를 점검하라고 말한다. 신자는 자신의 믿음을 늘 확인하고 개혁할 책임이 있다.

고후13:5, 너희가 믿음에 있는가 너희 자신을 시험하고 너희 자신을 확증하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희 안에 계신 줄을 너희가 스스로 알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으면 너희가 버리운 자니라.

 

 

넷째 필수 조건 : 이긴 자가 되는 신앙

계시록 2~3장의 일곱 교회에 대한 복된 약속은 언제나 이기는 자에게는으로 시작된다.

성서에는 선으로 악을 이기는 이김이 있고 (12:21), 빛으로 어둠을 이기는 (1:5) 이김도 있다.

죄와 세상에 대하여 죽은 자는 죄와 세상을 이길 수 있고, 자아에 대하여 죽은 자는 자신을 이길 수 있다. 부모의 마음은 자식이 모든 일에 이기는 자가 되기를 바란다.

하나님께서도 그리스도인들이 삶의 현실에서 지는 신앙이 아니라 이기는 믿음을 갖기를 바라신다.

 

 

다섯째 필수 조건 : 면류관이 예비 되는 신앙

성서에는 휴거되는 성도들에게는 면류관이 주어지고 환란성도들에게는 종려나무 가지가 주어진다.

면류관은 왕관을 의미한다. 천년왕국에서 주와 함께 다스리기 위한 조치이다.

고전9:25, “이기기를 다투는 자마다 모든 일에 절제하나니 저희는 썩을 면류관을 얻고자 하되 우리는 썩지 아니할” 딤후4:8,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 되었으므로 의로우신 재판장이 날에 내게 주실 것이니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니라.

경주장에 나선 그리스도인들은 필히 상을 얻는 경주를 하라는 권면의 말씀을 기억하자. (고전9:24)

 

 

여섯째 충분 제6조건 : 그리스도의 종으로 사는 신앙

죄의 종으로 살던 자신이 죄에서 해방되어 의에게 종이 되는 것이 참된 신자이다. (6:18, 벧전2:16)

1:1은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로 시작된다. 세상 사람은 자립과 자아실현(自我實現)을 갈망하고 추구한다. 그러나 이 세상에 영적 중립 존재하지 않는다. 십자가 사랑에 감화되어 스스로 주의 종이 되든지 타락한 본성에 매어 죄와 멸망의 종이 되든지 중의 하나이다.

오직 하나님의 의를 입고 그리스도의 종이 되는 것이 영생불멸의 자유로 가는 외길임을 감사하자.

고후4:5, “오직 그리스도 예수의 주되신 것과 예수를 위하여 우리가 너희의 것을 전파함이라.

고전9:19, “내가 모든 사람에게 자유 하였으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

 

 

일곱째 충분 조건 : 목숨 주고 가는 신앙

나 때문에 목숨을 버린 주님처럼 나도 가족과 이웃을 위하여 목숨을 주는 것이 더 큰 부활의 길이다. (요일3:16) 주님을 믿어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는 자는 죽어도 사는 불멸의 생명을 이미 갖고 있다. 고후4:10, “우리가 항상 예수 죽인 것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도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기움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니라.  그런즉 사망은 우리 안에서 역사하고 생명은 너희 안에서 하느니라.

 

 

출처 : 천안 은하교회 www.eunhachurch.net

출처 : 주님을 기다리는 신부들
글쓴이 : 영심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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